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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루프트한자 / Lufthansa

 

Lufthansa / 루프트한자

코드/콜사인: LH / LUFTHANSA

 

설립: 1953. 1. 6 / 운항개시: 1955. 4. 1

허브: 프랑크푸르트공항, 뮌헨공항 

본사: 독일 쾰른

동맹: 스타얼라이언스 (창립멤버)

마일리지: 마일즈 앤 모어 (Miles & More)

모회사: 루프트한자 그룹

http://lufthansa.com/

 

 


 

단 두 대의 비행기로 시작 오늘날 항공 업계의 거인이 된 루프트한자 그룹. 회사보다 로고의 역사가 더 긴 사연을 가진 항공사. 지나온 과정 그 자체가 곧 항공 역사의 산 증인이다. 유럽계 항공사 중 여객 수송량 1위를 다투는 유럽 최대 항공사 중 하나다. 

 

 

 

루프트한자의 운항 개시는 1954년 8월 인도된 콘베어340 두 대로부터 한다. 그리고 1955년 미 TWA에서 파견한 조종사10명의 지원 하에 1956년 3월말 록히드 L-1049 슈퍼 콘스텔레이션(Super Constellation)을 인도받고 프랑크푸르트-뉴욕 대서양 횡단 노선의 본격 운항을 시작한다. 1958년부터 노선이 확장되면서, 록히드 L-1649A 슈퍼스타와 쌍발 엔진의 콘베어 440, 비커스 비스카운트 같은 새 기종이 추가된다.

 

 

 

 

 

1960년대는 제트여객기가 본격화된 시대였다. 신생 항공사였던 루프트한자는 처음엔 제트 엔진에 신중했다. 경제성 등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보유 항공기 ‘제트화’의 추진을 결정한다. 첫 제트여객기 시대를 연 주인공은 당시 경쟁 모델인 DC-8을 제치고 보잉 B707이 차지했다. 제트여객기는 승객과 항공사 모두에게 신세계였다. 승객들은 부드럽고 진동이 없으면서도 조용한 제트기에 열광했다. 2배 많은 승객을 싣고 2배 빠른 속도로 날아 항공사에게는 운항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주었다. 한 대의 B707은 슈퍼 콘스텔레이션 4대의 역할을 했다. 혁명이었다. 승객수가 늘었다. 이는 운임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1961년 프랑크푸르트-뉴욕 노선의 가장 저렴한 왕복 요금이 1,703 마르크였는데 이는 프로펠러 시대인 1959년의 동일 노선보다 500마르크가 낮아진 것이었다. 당시는 독일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700 마르크이하였고 폭스바겐 비틀의 가격이 4,000 마르크였던 시절이다.

 

이에 힘입어 루프트한자는 중단거리 노선에도 제트기를 투입하기로 한다. 1964년3발 제트기인 보잉 B727-30 12대를 주문한 최초의 유럽 항공사가 되었다. 그리고 B727은 보잉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된다. 확신을 갖은 루프트한자는 보잉의 B737 개발에 적극 참여한다. 전후 처음 루프트한자는 항공 산업의 파트너로서 기술적 능력을 입증한다.B707에서 B727 및 B737로, 그리고 향후 점보 B747까지 일관된 기종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단일 제조사의 계열에 기반한 경제성과 운용 장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한편, 장거리 노선의 운영 본부를 함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전환하고 화물 사업도 확장한다. 1958~65년까지 세계 화물 수요는 3배, 루프트한자는 12배의 실적 증가를 이룬다. 1965년 한 해만 56,000톤의 화물을 처리했는데, 이는 (구)루프트한자가 15년간 나른 화물의 3배였다. 여객-화물 탑재의 신속 전환이 가능한 727-30 ‘퀵 체인지(Quick Change)’ 버전을 10대 주문했다. 가능. 화물 전용기인 727C의 경우, 운송의 혁명을 일으켰다. 강화플라스틱 섬유재로 만든 콘테이너인 이글루(igloos)에 롤러 팔레트와 트랙이 도입된 것이다. 

 

 

 

 

 

베를린 vs 쾰른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루프트한자의 설립은 연방 정부가 위임한 한스 본거스(Hans Bongers)의 비지니스 컨설팅 하에 이루어졌다. 그는 당시 서독의 수도인 본에 가까운 쾰른에 ‘베이스 캠프’를 세운다. 염두에 둔 본사 위치는 물론 베를린이었다. 하지만 당시 공역에 대한 주권을 부여 받지 못했던 서독은1989년까지도 베를린 취항 조차 불가능했다. 정치적 환경이 개선되면 베를린 이전까지 생각했으나, 상황은 오히려 고착화되었다. 본사가 쾰른에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운영 본부는 점진적으로 프랑크푸르트에 구축하게 된다. 본사는 쾰른이지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투자유치를 맡은 운영 본부는 프랑크푸르트의 루프트한자 에비에이션 센터(Lufthansa Aviation Centre / LAC)에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이어 2000년대에는 뮌헨 공항이 제 2의 허브 공항이 된다. 2003년 6월 오픈한 뮌헨 공항의 제 2터미널은 항공사가 터미널을 부분 소유한 유럽 최초의 사례다. 한편, 부실 공사 등의 문제로 개항이 연속 지연되고 있는 베를린의 신공항 브란덴부르크 공항이 개항하더라도 루프트한자의 허브는 현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체제에 변함이 없을 예정이다.

 

 

 

 

 

 

 

 

디지털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항공사라는 점이다. 전 세계 최초로 기내 인터넷 서비스인 플라이넷(FlyNet®)을 도입한 곳이 루프트한자다. 2000년대초부터 이미 여행사와 연계된 디지털 플랫폼을 도입하여 여행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고, 웹사이트/모바일앱, 홈태그, 리모와(Rimowa) 전자태그 등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패전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항공사

독일 최초의 항공사라는 타이틀은 1917년 도이체 루프트-레더라이(Deusche Luft-Reederei, DLR)가 생겨나면서다. 이 DLR은 1923년 도이체 에어로 로이드(Deusche Aero Lloyd)에 합병되고, 이 회사는 1926년 융커스 루프트 베르커(Junkers Luft Verkehr)에 합병되면서 도이체 루프트 한자(Deusche Luft Hansa, DLH)라는 이름의 독일 국적 항공사가 탄생한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문을 닫게 된다. 

전후 연합군 통제 하의 독일에는 오로지 상업적인 목적으로 뛰어든 외국 항공사들만 있었다. 독일 정부 입장에서 경제 재건을 위한 국적 항공사의 설립이 절실했다. 마침내 흩어졌던 직원들까지 모아 1953년 1월 6일 쾰른에 본사를 둔 ‘항공 주식회사 (Aktiengesellschaft für Luftverkehrsbedarf /Luftag)’가 설립된다. 연합군이 첫 도이체 루프트 한자를 해체한 지 2년만이었다. 청산 중이던 최초 회사로부터 사명과 트레이드마크인 학(crane) 로고의 판권도 사들였다. ‘도이체 루프트한자 주식회사(Deutsche Lufthansa Aktiengesellschaft)’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첫 발은 내디뎠으나 기술 센터는 미국과 영국에만 있었다. 전후 융커스, 하인켈 같은 제작사를 비롯 독일의 항공 산업 기반은 공백 상태였다. 기종의 도입, 조종사, 승무원, 기술자의 확보 및 교육, 그리고 정비 조직 등의 구축에 어려움이 컸다. 어려운 시기에 추진한 이 프로젝트는 겨우겨우 성공했다. 1955년 4월 1일, 2대의 콘베어 기가 각각 함부르크와 뮌헨의 활주로를 날아 올랐다. 정기 항공 업무의 개시였다. 유럽 ​​노선망의 구축과 동시에 미국, 아프리카 및 극동 지역 항공편도 추가되었다. 도쿄 등 극동 노선은 1961년, 아프리카는 1962년 진출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대륙, 호주는 1965년 취항한다. 이 시기 루프트한자에게는 또 하나의 ‘임무’가 부여되기도 했다. 그건 바로 전후 독일의 이미지 개선과 외국 관광객의 유치였다.

 

1990년 10월 28일 오전 9시 40 분, 쾰른-본 공항에서 출발한 A310-300 ‘Donaueschingen’ 루프트한자 6100편이 베를린 테겔 공항에 착륙했다. 이는 뜻 깊은 ‘사건’이었다. 종전 이래 오직 서방 연합국의 항공기만 허가됐던 베를린 가는 길이 독일 통일로 열린 것이다. 독일 통일로 인한 수요 급증은 독일 내 항공 수요는 물론 서유럽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다.  90년대 후반 그룹은 큰 변화를 맞는다. 그룹의 전략에 따라 계열사들이 하나씩 독립했다. 그리고 1997년에는 독일 정부의 주도하에 민영화를 이룬다. 모두 그룹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루프트한자 그룹은 여객 항공 그룹, 물류, MRO, 케이터링, 그리고 IT 서비스, 5개 운영 부문으로 조직된 540여 개의 자회사 및 지분 투자를 하는 글로벌 항공 그룹으로 발전했다. 

 

 

 

 

 

 

광동체 시대

1970년 3월 루프트한자의 첫 보잉 B747-100이 함부르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점보기의 시대가 열렸다. 루프트한자는 장거리 노선에서 점보기를 타볼 수 있는 최초의 유럽 항공사가 되었다. 이륙 중량 322톤에 361명의 승객이 탑승했지만, 이중 통로 덕에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가 가능했다. 퍼스트클래스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은 점보기의 상징이 되었다. 이어서 최신 기술을 갖춘 더글러스의 트라이제트인 DC-10도 광동체기 붐에 합류했다. 특히 장거리 버전인 DC-10-30은 승객수가 점보기에는 미치지 않는 남미나 극동 아시아에 투입되었다.

 

2년 후인 1976년 2월 루프트한자는 중거리용 첫 쌍발 엔진 광동체인 최초의 A300을 인도받는다. 이 기종은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1969년 양자간 개발 계약 서명을 한 결과물이었다. 1970년 12월에는 유럽의 대항마인 에어버스 인더스트리가 공식 설립된다. A300은 중단거리 노선 승객도 광동체기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의미했다. 바야흐로 비행기는 대량 운송 수단의 주역이 되게 된다. 

 

독일 및 단거리 노선에서는 1992년까지 A320계열이 B727을 완전히 대체하고, 1989년에는 2인 조종체계인 B747-400을 들여온다. 한편으론, 점보기 아래급의 장거리 항공기 확보도 추구하여, 당시 연비와 환경에 가장 진보된 기체로 평가받던 에어버스 A340을 도입한다. 한동안 747과 함께 루프트한자의 장거리 노선에서 주 기종으로 활약하던 A340기종은 최근 입지가 애매해졌다. 장거리 대형 기종에선2010년 도입한 A380-800과 2012년 도입한 B747-8i , 그리고 장거리 중형 기종에선 A350에 밀리고 있다. 

 

독일이 프랑스와 함께 에어버스의 축을 이루는 국가인 만큼 루프트한자는 에어버스와 가까운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긴밀했던 보잉과의 관계도 여전하다. 루프트한자는 미국 이외 지역의 최초 버전인 747-100의 첫 고객이자 747-200F화물 버전의 글로벌 발주사였다. 747-400은 루프트한자의 다양한 부서에서 직접 참여해 성공한 모델이다. 최근의 대표적 기종은 보잉의 슈퍼 점보 B747-8i다. 루프트한자는 B747-8i의 첫 & 최대 운용 항공사다. 루프트한자의 기술 역량은 보잉 B737 및 B747-400과 에어버스 A310 및 A340을 개발하는 데 양쪽 모두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해왔다.

 

한편, 한국 취항은 1984년부터 시작했다. 한국 노선은 34년 동안 단항 없이 지속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지속적으로 최대 혹은 최신 기종을 한국 노선에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엔 B747-8을 한국 최초로, 2015년에는 유럽계 항공사 중 최초로 A380을 투입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지난 2월부터 최신 기종인 A350을 투입했다. 또한, 4개 클래스(퍼스트, 비즈니스, 프리미엄 이코노미, 이코노미)의 객실을 모두 갖추고 있다.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항공사답게 국적사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퍼스트 클래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던 vs 클래식

첨단 신기종에 빠르게 반응하는 루프트한자, 한편으로는 초창기 빈티지 항공기의 복원에도 적극적이다. 뮌헨 공항에의 방문자 공원에서는 Ju52/3M, 슈퍼 콘스텔레이션, DC-3 세 대의 루프트한자 기체를 직접 볼 수 있다. 이곳의 기체는 전시용이지만, 원한다면 초창기의 융커스 Ju 52는 직접 타고 날아볼 수 있었다. 비행 가능한 기체 중 한 대가 루프트한자에 의해 체험 비행으로 운용되기도 했다. 

또한 2007년 12월, 도이체 루프트한자 베를린 재단은 경매를 통해 1958년~1960년까지 루프트한자의 기함이었던 록히드 L-1649A ‘슈퍼스타(Super Stars)’를 3대 구입했다. 최초로 북대서양을 양방향으로 논스톱 운항할 수 있었기에 아일랜드의 섀넌(Shannon)이나 캐나다의 구스베이(Goose Bay)에서 하던 연료 보급을 옛 추억으로 만든 기념비적인 기체다.

 

 

 

 

 

회사보다 오래된 로고, 하늘을 나는 우아한 학 - 브랜드 이야기

항공사의 이름은 독일어의 Luft(air)와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Hansa에서 만들어졌다. 루프트한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도이체 루프트-레더라이DLR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오토 피를레Otto Firle가 도안한 우아하게 나는 학 로고를 이미 191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2년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인 오틀 아이허(Otl Aicher) 에 의해 대대적인 CI 개편을 거치면서 오늘날 익숙한 타이포그래피와 색상 등이 만들어진다. 학 로고는 이런 큰 변화의 와중에도 살아 남는다. 오틀 아이허는 이 학을 그대로 둔 채 원으로 둘러싼 로고로 만들었는데, ‘원 안에 갇힌 새는 이코노미석에 갇힌 승객을 의미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고. 루프트한자는 최근 로고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로고와 기체 도장을 개편했다. 기존의 노란색이 사라지고 프리미엄 항공사의 이미지를 표방하며 하나의 짙은 남색으로 바뀌었다.

 

 

 

루프트한자는 늘 혁신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온 항공사 중 하나다. 80년대에는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공항간 루프트한자 에어포트 익스프레스(Lufthansa Airport Express)라는 세계 최초의 항공사 제공 철도 서비스를 시도했다. 또한여행사들이 관련 항공사들의 티켓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해주는 IT회사, 아마데우스 (Amadeus)를 세운것도 당시에는 여행 업계의 혁신이었다. 창립 멤버로서 세계 최초의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를 만든 것, 세계최초 기내 인터넷 도입 등 셀 수 없이 많다. 현재도 루프트한자는 2016년 페이스북 메신저 기반으로 대화식 인터페이스로 항공요금 정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인 챗봇 ‘마일드레드(베타버전),’ 2018년 뮌헨 공항과 함께 길 안내, 공항 시설 위치 등 승객들을 돕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테스트 단계)’ 등 끊임없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50년대말 등장한 ‘세니터Senator)’ 서비스. 대서양 노선에서 먼저 제트여객기를 도입한 경쟁사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럭셔리 서비스로 지금까지도 그 이름과 최상위 서비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만든 퍼스트클래스 전용 터미널은 풀 서비스 레스토랑, 풀 바, 시가 라운지, 휴게실 및 사무실과 샤워 시설을 갖추고 있다. 승객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포르쉐 카이옌, 포르쉐 파나메라 등을 통해 출발 항공편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루프트한자의 장기 전략은 항공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서비스 공급 업체로 발전하는 것이었다. 네트워크 항공사로서 루프트한자, 스위스 항공, 오스트리아 항공을, 지점 간 연결 항공사로서 유로윙스, 브뤼셀 항공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 약 400개 이상의 도시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기에 오랜 전통인 분권화 전략에 따라 1995년 루프트한자 테크닉, 루프트한자 카고 AG 및 루프트한자 시스템즈가 그룹에서 독립한다. 특히, LSG 스카이 셰프(LSG Sky Chefs)는 세계 최대 항공 케이터링 회사로 세계 항공사의 1/3에 기내식을 공급하고 있다. 항공업계 최악의 침체기였던 911테러 이후 과다한 경쟁과 불황에서도 루프트한자 그룹만은 이를 피해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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