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항공백과-군용기

B-36 피스메이커 / Peacemaker

@Commons.wikimedia.org

핵 전략폭격기로 개발된 후류 엔진 방식의 초대형 폭격기

 

B-36 피스메이커 (Peacemaker)

제작사: Convair / USA

첫 비행: 1946. 8. 8 / 실전배치: 1948

생산대수: 384대 (1946~1954)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폭격기가 영국 상공을 폭격하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개시되자 미 육군항공대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만일 영국이 패배하고 대부분의 서유럽이 독일의 손에 들어가 미국과 독일이 전쟁에 돌입할 경우, 중간 기착지없이 대서양을 횡단하여 전쟁을 수행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 육군항공대 수뇌부는 북미에서 유럽까지 논스톱으로 날아가 공격할  있는 장거리 폭격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과 육군항공대 지휘관들과의 회의끝에 대륙간 중폭격기 개발을 지시했다.

 

 

 

1941 4 11,  육군항공대는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미국 본토 기지에서 발진해 유럽을 폭격할  있는 장거리 폭격기 개발 제안서를 전달했다.  

 

 

 

요구 사항은 25000피트 상공에서 최고 속도 450마일(724km/h)을, 시간당 순항 속도 275마일(445km/h)에 45,000피트(14000m)의 실용상승한도였다. 특히, 25,000피트 상공에서 12,000마일의 항속거리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당시 B-17E 폭격기가 25,000피트에서 317마일의 최고 속도를 냈으며 실용상승고도가 37,000피트이고 최고 항속거리가 2,000마일인 것을 감안하면 육군항공대의 이같은 요구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는 1941 8, 5,000피트(1524m)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할 것과 240에서 300마일의 순항속도와 40,000피트(12000m) 실용상승한도와 10,000마일(16000km) 최고 항속거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중에서 특히 10,000파운드(4500kg) 폭장능력과 10,000(16000km)마일의 최고항속거리는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었다. 덕분에 계획에 입각해서 만들어지는 폭격기를 (ten)- 폭격기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B-29가 장난감으로 보일 정도로 크다.

 

 

 

 

제작도 제작이지만 운용도 결코 쉽지 않았다. 크기, 중량, 레시프로 엔진과 제트 엔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잡한 시스템 등 비용도 많이 들고 정비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프로펠러를 돌리는 6개의 레시프로 엔진의 경우  당시 항공기용 피스톤 엔진의 한계에 가까웠기에 수명도 짧고 유지보수가 자주 필요했다. 윤활유를 보면 엔진 1개 380리터의 윤활유 탱크가 필요했는데, 한 번의 비행에서  소모해버리거나 교환해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비행 중 윤활유가 소모되어 도중 비행계획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든 B-36이 활약을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차 대전에 출현했다면 모르겠지만, 냉전 시대에서는 이미 MiG-15 같은 제트전투기가 등장했다. 또 고공 비행으로 회피하려 해도 이번에는 SA-2같은 대공 미사일이 등장했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폭격기처럼 탄행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콘셉트로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항공백과-군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Br.1150 애틀랜틱 / Atlantic  (0) 2022.05.05
F-14 톰캣 / Tomcat  (0) 2022.05.02
F-111 아드바크 / Aardvark  (0) 2022.04.30
Su-34  (0) 2022.04.29
Tu-95 베어 / Bear  (0)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