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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Q&A

비행기 엔진에 '눈깔' 무늬를 그렸던 진짜 목적

[영상 소개]

요즘 대세인 제트여객기의 터보팬 엔진을 들여다 보면 중심부에 흰색의 나선형 무늬가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것이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 조류 충돌)를 막기 위해, 즉 새가 비행기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려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없었나? 

 

"근데...엔진이 돌아가면 진짜 새가 저걸 볼 수 있을까?"

 

 


 

@Wikipedia

 

이 무늬의 이름은 스피너 스파이럴(Spinner Spiral)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무늬를 그려 넣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새가 아닌 사람을 '쫓아내기' 위함이다. 

 

 

@theSKYmag

공항 계류장에서 일하는 지상요원들은 늘 아차 하는 순간 엔진에 빨려 들어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그런 사고도 있었다. 물론 그 큰 소음을 내는 제트엔진이 켜져있는데 어떻게 바로 옆에서 모를 수가 있나 싶겠지만, 계류장에는 비행기가 한두 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늘 시끄러운 환경이라 작업자들은 보통 귀마개를 착용하기 때문에 엔진의 가동 여부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보잉 737 같은 비교적 작은 비행기의 엔진조차 공회전 상태에서도 최소한 9ft (약 2.7m) 거리까지는 물체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엔진이 훨씬 큰 대형기는 당연히 더욱 위험할 것이다. 엔진의 팬 블레이드는 빨리 돌면 잘 보이지 않는데 이때 엔진 스피너에 무늬가 그려져 있으면 시각적으로 엔진이 가동 중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터보프롭엔진을 단 비행기도 프로펠러 끝에는 보통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을 칠해 프로펠러가 돌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스피너 스파이럴 무늬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 초창기 항공기부터 2차 대전 무렵의 항공기들 특히, 독일 융커스(Junkers)나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전투기 등에는 프로펠러의 스피너에 스파이럴 무늬를 그려넣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연합군 사수가 조준을 할 때 헷갈리도록 했다는 그럴싸한 '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늘날의 여객기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정비 요원들이 프로펠러가 돌고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새 얘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새를 쫓아내라!
엔진에 이런 무늬를 그려 넣는 목적으로 종종 얘기되는 것이 '버드스트라이크 방지용'이라는 것이다. 사실 버드스트라이크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다만 보통은 심각하지 않은 경우라 회항이나 긴급 비상 착륙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 하지만 정말 운이 없으면 추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일명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 유명해진 US에어웨이즈 1549편이다. 새떼가 양쪽 엔진을 모두 꺼뜨린 정말 드문 경우였다. 승객들은 지옥과 천국의 문을 한 번씩 드나든 셈이다.

미 네브래스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로 직접 이어지는 버드스트라이크는 거의 없지만 이로 인한 연간 피해 비용은 미국에서 4억 달러, 전 세계적으로 12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피해를 줄여보고자 연구를 했던 항공사가 있었는데, 바로 일본의 ANA(전일본공수)이다. 1986년 1년간 실험을 했다. 자사의 장거리 기종인 보잉 747과 767기 26대의 엔진에 눈알 모양(Wobbly Ball)의 무늬를 그려 넣고 이 무늬가 없는 비행기와의 차이를 지켜본 것이다. 그 결과 버드스트라이크 발생이 크게 줄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효과를 확신한 전일본공수는 자사의 모든 장거리 비행기 엔진에 이 무늬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Wikipedia

논란
새들은 비행기 엔진이 시커멓게 보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은신처로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흰색 무늬로 뭔가 보이는 것을 넣어주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임을 경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 무늬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측 입장이다.(한편으론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또 한편으론 글쎄요...) 이 이론에 따르면 무늬가 꼭 '눈알'처럼 보여야 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반면, 회의론자들은 스파이럴 무늬는 어차피 엔진 회전수(RPM)가 높을 때는 잘 보이지도 않으며, 새는 20~30m보다 먼 거리에서는 새들이 물체를 보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피하려고 할 시점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즉, 다 '헛짓'이라는 얘기죠. 이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엠브라에르 사의 비행기 등 일부 기종 엔진에는 이런 무늬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에 대한 주요 업체의 상반된 입장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2004년 브로셔에서 스파이럴 무늬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스피너에 그려진 소용돌이 모양이 비행 중에는 깜박이며 새를 놀라게 해 엔진을 피해 멀리 날아가게 한다고 말한다. 반면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은 사내지에 실린 글에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오류로 바로 이 스피너 스파이럴 무늬가 새를 쫓는다는 '썰'을 들기도 했다. 

이처럼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여전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엔진 스피너에 흰색 무늬를 그려넣는 데 큰 돈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푼돈을 들여 단 1%의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면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만약 버드스트라이크로 엔진이 망가지거나 더 큰 사고가 발생하여 받는 손실을 생각하면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